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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이랬다.
「 응─? 에도에 이런 여자가 있었던가... 뭔가 흥미롭게 생겼어. 」
「 대장 미쳤어!? 」
「 ...네? 」
다짜고짜 내 앞으로 와서 두 눈을 깜빡이며 내 머리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자기 혼자 쿡쿡 웃는다.
「 아아, 미안~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렸네. 저기~ 내 말 듣고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너가 흥미롭게 생겼다는 건 너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
「 대장…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까 했던 말은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거든요? 」
「 아부토, 조금만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하.
아쉽지만 우리가 지금 바빠서 급히 가봐야 될 곳이 있거든. 그럼 나중에 또 봐, 시민씨. 」
뭐야, 이 사람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진선조? 경찰?
경찰이 시민한테 그런 말을 해도 돼? 그것도 언제 봤다고 반말!?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느닷없이 나타나서 느닷없이 가버리는 영문 모를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던 느낌은 아직도 생각하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이상한 경찰과의 첫 만남이 지나고 나중에 또 어디서 만났냐면…
「 어서 오세요~ 」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러 나갔는데
「 아부토. 오늘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할까? 」
「 여긴 라멘 가게잖아? 아까 오므라이스 먹자고 하지 않았... 아, 나 참...
목적은 이거 였구만. 」
「 그럼 여기 라멘 두 개. 내 건 특별히 고기 많이 넣어준다면 무지 좋을 거 같아~ 」
그때 만났던 이상한 경찰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바람에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었지만
'아가씨, 주문 안 받아?'라는 소리에 거의 도망치다시피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이윽고 주문받은 라멘 두 개가 나오고 그것을 이상한 경찰 앞에 뒀을 때, 뭔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부러 시선은 아래로 두며 모르는 척했다.
다행히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쉰 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던 순간...
「 ....? 」
고개를 들어보니 그 경찰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고
악순환의 반복은 시작되고야 말았다.
「 잘 먹었어~ 앞으로 여기 자주 올 테니까 나중에 또 보자구, (-). 」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동안 그 경찰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그때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이 땐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지만 그가 가고 난 뒤에 뒤늦게
유니폼에 달린 이름 적힌 명찰을 보고 불렀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이름은 '카무이'라고 말한 이상한 경찰은 그 후로 가게에서 자주 보게 되었고
며칠 뒤.
「 이 야밤에 어딜 가는 거야? 여자 혼자 다니기엔 너무 위험하다구? 」
가게뿐만 아니라 가는 길마다 내 앞에 나타나는 카무이 때문에 경찰을 보면서 새삼
무섭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으며,
「 흐응~ 너무 이쪽만 쳐다보면 곤란하달까. 」
그쪽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귓속말을 할 거면 작게 말하든지, 은근히 의식하면서
큰소리로 얘기하는데 자신의 상사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는 부하가 살짝 불쌍해 보였다.
「 요즘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모르는 사람이 와서
말 걸면 대답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
「 대장? 지금 이 아가씨한테 있어서 위험한 존재는 대장이거든? 」
「 하하, 할복해 아부토. 」
하루도 빠짐없이 몇 날 며칠을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나타나는
카무이한테 언제 한 번 너가 스토커냐! 왜 자꾸 따라다녀!라고 소리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카무이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 시민을 보호하는 건 경찰의 의무야. 너가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구? 」
암만 봐도 이건 경찰의 의무라고 허울 좋게 포장한 말 같은데.
어떻게 이 사람이 진선조가 되었으며 한 부대의 대장이 된 건지 알 턱이 없지만
만약 경찰을 안 했었다면 지금쯤 뭐 하고 살았을까.
「 글쎄~ 경찰 말고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 」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입에 무언가를 물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부하를 옆에 둔 채
또 내 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깜짝 등장하는 것도 적응돼서 별 감흥이 없지만.
그나저나 내 몸에 위치추적기 같은 걸 달아놨나.
항상 내가 있는 곳마다 녀석이 나타나는데 그것만큼 신기한 게 없다.
그리하여 카무이와 일방적으로 만남을 이어 온지도 어느덧 몇 달이 지나갔다.
비록 첫 만남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고
오늘 아침에도 카무이를 만난 후 잠깐 은행에 볼일이 있어 들어왔다가…
「 어이, 거기! 뭘 속닥거리고 있는 거야! 조용히 안 해? 」
「 죄, 죄송합니다!!! 」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고 말았다.
분명 은행에서 나오던 길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은행 강도들이
총을 든 채 은행 안을 장악하고 있었고 밧줄에 결박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채 구석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 으으… 」
밧줄을 얼마나 세게 묶어 놓았는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 단단히 묶어서 손목이 아릴 정도.
「 흐윽… 」
밧줄을 푸는 일에 전념하고 있을 즘 옆에서 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임산부가 보였다.
상태가 꽤 안 좋아 보이는데 저러다 쓰러지시면…
「 야마모토! 밖에 녀석들이 도착했다! 돈은 이제 다 챙겼으니까 인질을 동원해서 나가자고! 」
「 칫… 더러운 짓은 항상 나만 시키는군. 」
총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잠시 내 앞에서 멈추더니 이내 옆에 있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다가가서 밧줄을 풀어준 다음 몸이 가벼워진 아이의 이마에 총을 대며 경고하듯이 말했다.
「 허튼 짓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가만히 있으면 살려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
「 아, 안돼! 아이는 데려가지 말아요! 차라리 나를 데려가요!
그 아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
철컥. 순간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철컥' 소리 하나에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조용해진다.
아이를 인질로 삼은 강도는 아이의 엄마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협박을 한 뒤
다시 아이의 이마에 총구를 대면서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 아이를 인질로 삼다니 너무하지 않아~? 무서운 강도씨.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뭣? 방금 누가 나한테 그딴 식으로 말했어! 나와! 당장 안 나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죽여버릴 줄 알아! 」
목소리가 들린 근원지를 찾아 그쪽을 쳐다보자 익숙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진한 주황빛의 길게 땋은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 ....설마 카무이? 」
「 응, 맞아. 여기서 다 보네~ 역시 우린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이랄까~ 」
저 녀석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넘치는구나. 누구는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그런데...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거지?
「 하?! 너냐! 이 자식이 감히 나한테 잘도 그딴 말을 지껄였겠다! 이 총 하나면 네 녀석
머리통쯤이야 한 방에… 」
일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강도의 위로 서류 더미들이 잔뜩 쏟아져 내렸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강도와 카무이를 연신 번갈아가며 입을 벌린 채 보고 있었으며 발길질
하나로 무장한 강도에게 맞선 당사자는 여유롭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 여기 상황은 끝난 거 같고 바깥은…… 아, 벌써 끝났나 보네. 」
안에서 유리창으로 본 바깥의 상황은 카무이 말대로 대형 인질극 소동을 피웠던 여러 명의
강도들이 저마다 손목에 수갑을 찬 채로 진선조에 의해 연행되었고
카무이는 하나하나씩 밧줄을 풀어주고 있었다.
카무이 혼자 밧줄을 풀어주고 있을 동안 진선조 대원이 몇 명 들어와서 도와줬으며
그다음 내 밧줄이 풀릴 차례가 되었을 때 카무이가 왔는데 이때만큼은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카무이가 없었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겠지…
「 빨리 풀어줘. 」
내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카무이에게 어서 풀어달라고 말을 했는
데 여전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 ...새로운 취미에 눈 뜬 거 같아. 」
「 뭐? 」
밧줄이 풀린 사람들은 이미 집으로 가거나 은행 업무하러 가버렸는데 나만 풀어주지도 않고
또 무슨 이상한 말을 하려는 거야?
「 엄청 위험한 느낌이 들어. 」
「 ....? 」
「 이 상태로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
처음엔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밧줄에 결박된 내 모습을 보면서 하면 안 될 짓을
저지를 것만 같다는 카무이의 말을 듣고 결국 내가 엄청 소리를 지른 뒤에야 풀렸지만
가끔 저런 말을 아무렇게나 뱉는 카무이를 보면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지경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평소처럼 뻔뻔하게 웃으면서 내 앞에 나타나
말을 거는데 그럴 때마다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처럼─
「 (-) ~ 오늘은 라멘 하나야. 그러니까 특별히 고기를 많이 넣어준다면 무지 좋을 거 같은데- 」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부끄러워서 저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되는 경우가
최근 들어 부쩍 늘은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고민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뭐...
「 그럼 오늘도 맛있는 라멘 부탁해.
(-). 」